Anthropic이 2024년부터 비밀리에 진행한 'Project Panama'는 수백만 권의 책을 구매해 유압 절단기로 제본을 자르고 스캔한 뒤 파쇄하는 방식으로 Claude의 학습 데이터를 확보한 프로젝트였다. 불법 다운로드 도서 관련 소송은 15억 달러 합의로 마무리됐지만, 합법적으로 산 책을 파쇄해 스캔하는 행위 자체는 법원에서 '공정 이용'으로 인정받았다. 구글 북스와 정반대로, 이 스캔본은 세상 누구에게도 공개되지 않는 사설 데이터로만 남는다.
2024년 2월, 구글에서 '구글 북스' 파트너십을 오랫동안 이끌었던 톰 터베이가 Anthropic에 합류했다. 그에게 주어진 임무는 단순했다. "합법적으로 안전한 방식으로, 세상의 모든 책을 확보하라." 문제는 그 전 이력이었다. Anthropic은 이미 Books3, LibGen 같은 불법 복제 사이트에서 최대 700만 권에 달하는 책을 무단으로 긁어다 Claude 학습에 썼고, 그 대가로 작가들에게 저작권 소송을 당한 상태였다.
터베이는 출판사와 하나하나 라이선싱 계약을 맺는 방식을 택하지 않았다. 내부 문서에는 이 방식을 두고 "법무와 영업이 끝없이 이어지는 슬로그(slog)"라고 표현하며 비효율적이라 판단한 흔적이 남아 있다. 대신 선택한 건 훨씬 과감한 방법, 책을 통째로 사들이는 것이었다. 이름하여 'Project Panama'. 내부 문서에는 이 프로젝트의 목적이 이렇게 적혀 있었다. "전 세계 모든 책을 파괴적으로 스캔하려는 노력."
실제 작업 공정은 이랬다. 절판본과 희귀본을 포함해 책을 대량으로 구매한 뒤, 유압 절단기로 제본을 잘라 책등을 통째로 제거한다. 낱장이 된 페이지는 고속 산업용 스캐너에 넣어 검색 가능한 PDF로 변환한다. 남은 종이 뭉치는 트럭에 실려 재활용 업체로 보내져 펄프가 된다. 한 벤더 제안서에는 이 작업을 6개월 안에 50만~200만 권 규모로 처리하겠다는 목표까지 적혀 있었다. 약 1년간 여기에 투입된 돈은 수천만 달러 규모였다.
이렇게 스캔된 PDF는 Claude 학습에 쓰였고, 동시에 "영구 보관"을 목적으로 한 비공개 검색 라이브러리로 구축됐다. 여기서 구글 북스와의 결정적 차이가 드러난다. 구글은 스캔 후 책을 도서관에 돌려주고, 검색 결과 일부를 공공에 공개했다. 반면 Project Panama의 스캔본은 원본이 파쇄된 채 그 누구에게도, 어떤 도서관에도 공개되지 않는다. 오직 Anthropic 내부에서만 쓰이는 데이터다. 내부 문서에는 이런 문장도 있었다. "이 작업을 하고 있다는 걸 알리고 싶지 않다."
이 사실이 세상에 알려진 건 2026년 1월, 법원 문서 봉인이 해제되면서였다. 별도로 진행 중이던 불법 다운로드 도서 관련 집단소송은 2025년 9월 15억 달러 합의로 마무리됐고, 저자 1인당 책 1권 기준 약 3,000달러씩 지급됐다. 2026년 7월 이 합의는 법원 최종 승인까지 받았다. 그런데 정작 '합법적으로 구매해서 파쇄한' 책들에 대해서는 담당 판사가 초판 소유권 원칙을 근거로 AI 학습용 활용을 공정 이용으로 인정했다. 돈 주고 산 책을 자르고 스캔하는 것 자체는 죄가 안 된다는 뜻이다.
결과적으로 Anthropic은 가장 시끄러운 방식으로 저작권 소송에 시달리면서도, 가장 조용히 진행한 파쇄 스캔 작업에서는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다는 판단을 받아낸 셈이다. 합의금 15억 달러가 발표된 시점, Anthropic의 기업가치는 9,650억 달러로 평가됐다. 책 한 권 만드는 데 드는 시간과 비용을 생각하면, 그 책이 몇 초 만에 유압 절단기 아래서 사라지는 장면은 어딘가 화씨 451을 떠올리게 한다. 다음에 헌책방에서 절판본을 발견하면, 그 책이 어느 날 스캐너 앞을 지나갈 수도 있다는 사실을 한 번쯤 떠올려볼 만하다.